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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이었을까 오늘의 기분은 무슨 색이었을까— 감정의 팔레트에서 나를 고르다 1.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다면?“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끔은 대답하기가 어렵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뭐랄까, 뿌연 날씨 같은 기분.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기분을 색으로 표현하면 무슨 색일까?”이 질문은 의외로 감정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준다. 슬픔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감정도, “진한 회색이야”라고 말하면 이상하리만치 구체적이 된다. 분노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분노는 검붉은 보라색일 때가 많다. 답답함은 벽돌색, 무기력은 연한 회색빛 하늘색, 그리고 들뜬 감정은 형광 노랑처럼 반짝인다.색은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복잡한 감정을 담을 수 있다. 그래.. 2025. 7. 3.
선을 긋는다는 것 선을 긋는다는 것— 창작이 마음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하여 1. 아무 의미 없이 긋기 시작한 선 하나어느 날 저녁, 뭘 해도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었다. 말을 해도, 글을 써도 정리가 안 되던 그때, 나는 갑자기 펜을 잡고 종이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의도도 없고, 형태도 없이 그냥 긋는 선. 길고 짧고 굵고 가늘게,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손끝.처음엔 낙서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이 마음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뇌가 아닌, 감정이 직접 펜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그리고 나는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은 선이, 내 감정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창작은 때때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것이다. 선 하나가 감정을 설명하진 못해도, 적어도 감정을 흘려보내.. 2025. 7. 2.
거울 속의 나와 낯선 초상화 거울 속의 나와 낯선 초상화— 예술 감상은 결국 나를 비추는 일이다1. 자화상 앞에서 나를 마주하다가끔 미술관에 가면, 사람 얼굴이 그려진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특히 자화상. 고흐의 휘청이는 붓질이나 프리다 칼로의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빛, 렘브란트의 무채색 그림자 속 눈 밑 주름들. 낯선 얼굴인데 이상하게 익숙하다. 익숙한데 불편하다. 왜일까.나는 그 앞에서 내 얼굴을 본다. 내가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내 표정 같다. 어떤 날은 씩 웃는 자화상이 내 감정과 멀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괴롭고 지친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피하고 싶어진다.예술은 타인의 표현물이지만, 감상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그래서 감상은 늘 ‘개인적’이다. 그림을 보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빌려 나를 비추는.. 2025. 7. 2.
노랑이 나를 건드릴 때 노랑이 나를 건드릴 때— 감정과 색채, 그리고 나의 일상 감상법 1. 노란색 앞에 서면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린다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갤러리나 카페 벽에 걸린 작은 그림 하나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 적. 나는 그날, 아무 생각 없이 앉은 카페 구석에서 노란색 해바라기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특별히 잘 그린 것도 아니고, 화려한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노란색이 나를 흔들었다.나는 생각했다. "왜 하필 노란색일까?"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기호다. 인지심리학적으로 색은 우리 뇌의 정서적 반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랑은 흔히 ‘밝음’, ‘생기’, ‘에너지’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불안정’, ‘애잔함’의 기운도 갖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2025. 7. 2.
아이들과 함께 간 환기미술관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에 간다는 건 사실 약간의 모험이다.그림 앞에서 3분도 안 지나 "배고파", "언제 가?"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걱정된다.하지만 어느 날, 주말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김환기 전시를 보러 갔다.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김환기의 세계는, 어른의 시선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1. “왜 이렇게 점이 많아?”로 시작된 대화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호가 물었다.“엄마, 왜 이렇게 점이 많아? 누구 물건이에요?”아이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정곡을 찔렀다.김환기의 점화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설명을 배제한 작품들인데, 아이는 그 점들에 ‘주인’을 상상했다.아들은 점 앞에서 손가락으로 점 개수를 세더니 “엄마, 이건 우주야”라고 말했다.나는 순간 멈칫했다.맞다.. 2025. 6. 25.
내 방에도 미술작품 한 점: 일상 속 미술의 위로 가끔 상상한다.내 방 벽에 김환기의 점화 한 점이 걸려 있다면 어떨까.해가 진 뒤 잔잔해진 방 안, 스탠드 불빛 아래 파란 점들이 조용히 반짝이고, 그 앞에 앉은 나.하루의 피로는 말없이 물러가고, 마음엔 바람이 지난다.그 한 점의 그림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는 착각. 아니, 진짜 위로.1. 김환기 그림 앞에서의 ‘쉼’김환기의 그림은 화려하지 않다.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다.그의 점들은 마치 숨 쉬듯 화면 위에 놓인다.규칙적인 듯하지만 조금씩 다르고, 차갑게 보이지만 은근히 따뜻하다.그건 어쩌면 사람이 숨 쉬는 방식과 비슷하다.들쭉날쭉하고, 고르고, 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진 않은—그 리듬.그림을 보는 일은 그래서 ‘멍때리기’와는 다르다.내가 바라보는 동시에 그림도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바로 그런 느낌 때문.. 2025. 6. 25.